마중물교회

 1. 통합의 시간 : 죽음이여 으스대지 마라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중에서)

 

 

2. 생존의 길 vs 믿음의 길

 

두려움이 엄습할 때, 내가 어쩔 수 없는 고통앞에 서야 했을 때

어린시절 나의 반응은

'언젠가는 - 몇  일 뒤나 다음주 이맘때면, 아니 내년 이맘 때쯤이면 - 이 문제는 저멀리 뒤에 있을꺼야'

라는 실낱 같은 이 희망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고,

그 기대를 붙잡아야 지금 당장의 불안과 고통을 삼키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반응에 익숙해지고, 또 그것은 흡사 솔로몬과 같은 성숙한 현자들의 반응인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의식과 비슷한 지혜로운 방식이라 생각도 해 보지만

실상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비록 외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너무나 다른 길이었음을 이제야 희미하게 발견한다.

 

전자는 어떻게든 이 고통의 시간이 속히 지나가고,

고통과 불안이 사라져 있는 그 언젠가의 때가 속히 도래하길 바라는 것.

 

후자는 고통이든, 영광이든 그 무게에 짓눌리거나 들떠서, 현재를 잃어버리지 않고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살아 숨 쉬는 이 순간 참되게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

 

전자는 생존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지금 현재 생존의 순간을 바르게 소유하지 못하고,

후자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영욕가운데 기억함으로써,

자기 존재감이 극적으로 확장되거나 위축되는 순간에

자기 기만이나 자기연민의 함정에서 벗어나 현재를 소유하고자 하는 몸짓이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듯한 고통 가운데에서는 어찔할 도리 없이

나는 학생시절 내게 도움이 되었던 그 방어기제를 오랜동안 의지해왔다.

 

참고 지내면 좋은 날 오겠지..

억지라도 '그렇게 믿어야만' 살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젠가 부터인가

고통스런 현실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것

 

그 고통과 상실, 실패를 끌어안고서도 여전히 인간의 자리,

삶과 사랑을 배우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현실앞에서,

덫에 걸린 느낌, 직면하기를 유보하던 알지 못하는 고통과 원망이 현실적으로 들어닥친다.

 

희미한 소망가운데 고통을 회피할 때에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듯 했지만,
현재의 고통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실의 현장에서는 그 신앙은 온데간데 없고 원성이 올라오는 나 자신을 본다.

더 이상 예전의 막연한 기대에 의지해 일시적으로 회복한 마음의 길이
결코 온전한 믿음의 길이 아님을 현실은 나에게 폭로한다.

 

이 새로운 고통의 현장에서

바닥까지 무너지고,

하나님을 향해 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자신을 보면서

그 폭로를 나는 듣는다.

 

그러면서도, 그를 향한 이런 원망과 마음의 전투는

언제나 무익하고 백전백패일 것이라는 사실에 더 불쾌하고 화가나기도 한다.

'문제를 항상 내게로 다시 가져와야 하다니...!'

 

오래 기다려도 기다리던 소식이 내 앞에 펼쳐지지 않을 때에

그 절망과 실의의 쓰나미가 지나고 나서, 발견하는 한 가지.

나는 정말 '내가' 살고자 하는 구나.

 

미래의 희미한 희망을 끌어와 불안을 속히 걷어내고

현재의 어두운 마음을 몰아내기 위한 삶의 숨박꼭질을 또 할 것인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눈 앞에 벌어진 고통의 액면 그대로가 내 삶의 실체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믿음의 길은 먼 미래의 소망을 끌어당겨 현재의 위로를 삼는 것이 아닌,

지금 현상의 세계, 보이는 것 이면에서

믿음의 제목, 배움과 수용의 제목, 감사의 제목을 발견하는 안목을 갖는 길일 것이다.

 

현자들의 지녔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 의식은 언젠가 도래할 문제해결의 때/생존의 때를 향한 갈망이 아닌,

현상의 세계의 좋고 나쁨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고,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결의였다면,

 

우리에게 주신 복된 소식, 복음의 길-믿음의 길은

현자들의 이런 깨달음의 그 길위에 생명의 빛을 비춰준다.

 

왜냐하면, 굳이 인생무상을 떠올리며 고독한 자기 완성의 결의를 동원하지 않아도,

"그가 살아 계시기에...",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날,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그 날이 있기에.."

우린 인간의 자리가 어디인지 그 앞에서 분명하게 자리매김 할 수 있고

그 낮은 자리가 결코 수치로 끝나지 않음을 알며

하나님의 은총과 생명안에서 다시 일어나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덧글 (2)

김현민 2011-07-22 23:57:03

안집사님, 얼마전 까지만 해도 권위적인 상사에게 그냥 막 들이 박는다고 하더니만, 왜 이젠 갑자기 생존의 길을..
그사이 무슨 일 난겁니까.. 무사 합니까.. 그냥, 걱정이 좀 되어서요..

안오성 2011-07-23 21:39:09

^L^~
막들이 박다니요..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디요~~
비록 이 나이에 이르러 상사와 각을 세우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지만,
그래도 지혜롭게 각을 세우지요~^^

무사안녕합니다..ㅎㅎ
그래두..걱정해 주시는 분이 계시니 감사하구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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